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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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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

한국학자료원


◆ 책소개 ◆

『동의보감 단방』, 일상에서 만나는 쉽고 간편한 건강 처방전! 허준의 『동의보감』은 동양의학의 정수를 담은 의학서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의 5개 강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내과와 외과, 각종 잡병에 대한 치료법을 모아 일상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 바로 『동의보감 단방』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처방 대신, 한 가지 약재만으로 손쉽게 질병을 다스릴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합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이용한 처방을 담아 가정에서 쉽고 빠르게 응급상황이나 간단한 질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동의보감 단방』을 통해 동의보감의 지혜를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만나보세요. 건강을 위한 첫걸음, 이제 복잡한 처방 대신 단방으로 해결하세요!


◆ 목차 ◆

내경편 內景篇 신형身形 26 정精 39 기氣 49 신神 59 혈血 68 꿈夢 76 목소리聲音 82 진액津液 86 담음痰飮 94 5장과 6부五臟六腑 102 간장肝臟 110 심장心臟 117 비장牌臟 124 폐장肺臟 132 신장賢臟 139 위부胃腑 146 소장부小腸腑 154 대장부大腸腑 157 방광부勝航腑 164 3초부三焦腑 169 포胞 173 충蟲 187 오줌小便 200 대변大便 215 외형편 內形篇 머리頭 239 얼굴面 249 눈眼 260 귀耳 279 코鼻 287 입과 혀口舌 292 이빨牙齒 302 인후咽喉 313 목頸項 323 등背 325 가슴胸 327 젖乳 341 배腹 348 허리腰 353 옆구리脇 361 피부皮 364 살肉 375 맥脈 383 힘줄筋 388 뼈骨 393 손手 399 다리足 404 머리털毛髮 411 잡병편 雜病篇 천지운기天地運氣 420 땀汗 431 설사下 435 풍風 440 상한傷寒 454 서暑 460 습濕 462 화火 464 내상內傷 475 허로虛勞 487 곽란 499 구토嘔吐 506 기침該嗽 517 적취積緊 528 부종浮腫 536 창만脹滿 545 소갈消渴 551 황달黃疸 564 학질疾 574 온역溫疫 581 사수 590 옹저癰疽 599 여러가지 창諸瘡 613 여러가지 외상諸傷 624 부인병婦人病 642 어린이병小兒病 662


◆ 저자소개 ◆

허준
저자 : 허준 [ 許浚 ] 1546(명종 1)∼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의관. 저서 동의보감, 언해태산집요, 신찬벽온방, 벽역신방, 찬도방론맥결집성 대표관직 당상관 정3품, 종1품 숭록대부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30여 년 동안 왕실병원인 내의원의 어의로 활약하는 한편,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한 8종의 의학서적을 집필하여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자로 우뚝 섰다. 생애 허준은 뼈대 있는 무관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허론(許?)과 양반 가문 출신인 어머니 영광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정실(正室)이 아니었기에, 그의 신분은 중인으로 규정되었고, 이러한 신분은 문·무관보다 천하다고 여겨진 의관의 길을 택하는 데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훌륭한 가문의 배경 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다. 허준이 언제,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으며, 또 의관으로 나아갔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관직으로 볼 때, 허준의 장년 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內醫)로서 크게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1590년(선조 23) 허준은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이 품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규정한 서자 출신인 허준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정3품의 한계를 깰 정도의 큰 상이었다. 둘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승하하던 1608년(선조 41) 때까지이다. 허준이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함으로써 그는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1596년(선조 29)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친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 하나인 동반(東班)에 적을 올렸다. 1604년(선조 37)에는 임진왜란 공신 책봉이 있었는데, 허준은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정되는 한편, 그는 본관인 양천(陽川)의 읍호(邑號)를 받아 양평군(陽平君)이 되었다. 이와 함께 품계도 승진하여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1606년(선조 39) 선조의 중환을 호전시킨 공으로, 선조는 그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를 주고자 했으나, 사간원·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셋째, 1608년(선조 41)부터 그가 죽던 해인 1615년(광해 7)까지이다. 이 7년은 시련기로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고 먼 곳으로 귀향을 가는 등 불운이 있었고,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권세가 없는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고요하게 삶을 마쳤다. 1608년(선조 41) 선조가 병으로 죽자, 그것이 수의(首醫)인 그의 잘못이라는 탄핵을 받아 허준은 삭탈관직 되는 한편, 의주 유배형이 처해졌다. 그의 유배는 1년 8개월이 지난 1609년(광해 1)에 풀렸으며, 6년 후인 1615년(광해 7) 세상을 떴다. 사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했다. 의관 허준의 출세는 조선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는 그의 의술 솜씨와 우직한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다. 이와 함께 이를 질시한 양반계급의 불만도 작지 않았다.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세평(世評)도 존재했다. 출처- 허준 [許浚]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